디지털 유산 상속과 초상권 법제화, 왜 지금 필요한가?
사망 이후에도 살아있는 디지털 흔적들, 법은 따라오지 못했다
우리가 온라인에 남기는 기록은 단순한 글이나 이미지에 그치지 않는다.
사진, 영상, 음성, SNS 프로필, 유튜브 채널, 그리고 생성형 AI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공간 속의 나는 생전보다 더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사망 후에도 온라인에 남아 있는 다양한 흔적을 우리는
‘디지털 유산’이라 부른다.
그런데 문제는 이 디지털 유산 안에
고인의 얼굴, 목소리, 제스처, 감정 표현 등
인격적 정보, 즉 디지털 초상권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이를 추모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상업적으로 재가공하거나, 고인의 의사와 반하게 활용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유명인의 사망 이후에도 광고에서
그들의 얼굴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AI로 복원된 고인의 목소리로 노래를 만들거나,
메타버스 속 아바타로 재등장시키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는 여전히 사망자에 대한 디지털 초상권을 명확히 보호하는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다.
생전의 동의 없이 활용되거나, 유족의 의사와 충돌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디지털 유산 속 초상권’을 법제화할 시기다.
디지털 초상권이란? 개념 정리와 현행법의 한계
초상권은 일반적으로 개인의 얼굴이나 외모에 대한 공표, 사용, 복제 권리를 의미한다.
이는 사생활을 보호하고, 개인의 인격과 이미지에 대한 통제를 보장하기 위한 기본권 중 하나다.
하지만 디지털 초상권은 조금 더 복잡한 개념이다.
이것은 현실 세계에서의 얼굴 사진만 아니라,
AI로 생성된 목소리, 3D 캐릭터, 필터를 입힌 이미지,
디지털로 조작된 감정 표현까지 모두 포함된다.
문제는, 현재 대한민국의 초상권 관련 법령은
생존한 사람의 권리 보호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망자의 경우, 인격권이 소멸한다고 간주되어,
디지털 공간에서 고인의 얼굴이나 음성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행위에 대해
명확히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거의 없다.
미국이나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사망자 초상권이 일정 기간 보호되는 법제화가 진행 중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유족이 민사소송을 통해
‘정신적 피해’를 주장하는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경우도 성공률이 낮고,
사후 1년이 지나면 실효성이 거의 없다.
디지털 유산 상속과 초상권 충돌 사례들
사망자의 디지털 유산에는 사진, 영상, 게시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인의 이미지가 담긴 유튜브 콘텐츠,
음성이 녹음된 인터뷰,
그리고 SNS에 저장된 얼굴 인식 기반 필터 사진 등도 포함된다.
가령 다음과 같은 사례들을 생각해 보자.
유명 인플루언서가 사망한 후,
그가 출연했던 광고 영상이 계속 유튜브에서 재생되며 수익을 발생시키고 있다.
이때 가족은 채널을 삭제하고 싶어 하지만,
소속사는 '계약 당시 사용 동의'를 이유로 거절한다.
딥페이크 기술로 복원된 가수의 얼굴과 목소리가
새로운 광고나 콘텐츠에 사용되어 상업적 수익을 창출한다.
이 과정에서 유족의 동의는 없었다.
SNS상에서 사망자의 프로필 이미지나 스토리가
‘디지털 추모 콘텐츠’로 사용되면서,
다른 사용자들이 댓글을 남기거나 가공하여 2차 콘텐츠로 만들기도 한다.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고인의 얼굴이나 음성에 대한 소유권과 활용 권한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속법상 재산적 가치는 인정받을 수 있어도,
인격적 권리에 대한 기준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디지털 유산이 가족 간 분쟁, 기업과 유족 간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왜 디지털 초상권 법제화가 필요한가?
디지털 초상권을 법제화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고인의 권리 보호’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유족의 명예와 정신적 권리를 보호하고,
기업의 상업적 오남용을 예방하며,
AI 기술의 윤리적 사용 기준을 정립하는 핵심 과제다.
디지털 초상권이 법제화되면 다음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망자의 초상, 음성, 영상에 대한 상속자 지정 권한
누가 사용을 허가할 수 있는지 법적으로 정리 가능하다.
AI 딥페이크 기술의 무분별한 활용 제한
동의 없는 재현 행위에 대한 법정 제재 근거 마련할 수 있다.
SNS 플랫폼과 메타버스 기업의 책임 강화
사망자의 콘텐츠 사용 정책 수립과 사용자 보호 기능 도입 촉진해야 한다.
디지털 유언장과 상속 시스템과의 연동 가능성 확대
유언장에 ‘내 얼굴과 목소리를 어떻게 사용해도 좋은지’ 명시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디지털 초상권은
사망 이후에도 개인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디지털 인권의 연장선이다.
법제화가 이루어져야만, 고인의 이미지가
콘텐츠 시장에서 도구처럼 사용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블로거와 크리에이터가 이 문제에 관심 가져야 하는 이유
티스토리에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애드센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우리 같은 크리에이터들에게도
디지털 초상권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남기는 글, 사진, 썸네일, 프로필 사진, 유튜브 썸네일, 음성 콘텐츠 등은
곧 우리가 사망한 이후에도 인터넷상에 남게 될 디지털 유산이기 때문이다.
특히 얼굴이 담긴 사진을 콘텐츠에 자주 활용하거나,
음성 기반 콘텐츠, 인터뷰 영상을 블로그와 유튜브에 함께 올리는 경우에는
나의 이미지가 나도 모르게 상업적으로 활용될 위험도 존재한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디지털 유언장에 내 콘텐츠와 이미지에 대한 사용 허용 여부 명시하기,
블로그 운영 정보와 콘텐츠 백업본, 로그인 정보 등을 정리해 두기,
프로필 사진, 음성 콘텐츠, 영상에 대한 상속자 권한 지정,
AI 기술로 내 얼굴이 무단 사용되지 않도록, 저작권 마크 및 워터마크 삽입과
같은 대비가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에 블로거도 콘텐츠 크리에이터도
자기 얼굴과 이름을 지켜야 하는 주체가 된다.
그러기 위해선 단순한 계정 보호를 넘어서
법제화된 디지털 초상권이라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