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럽, 그러나 다양한 디지털 상속 법제도
유럽연합(EU)은 단일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지만, 개별 국가들은 여전히 서로 다른 법률 체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디지털 자산’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재산을 어떻게 정의하고,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상속할 것인지에 대한 접근은 국가마다 상당히 다르다. 유럽은 개인정보보호에 민감한 사회 분위기, 디지털 권리 보장에 대한 높은 기준, 그리고 기술 기업에 대한 강한 규제력으로 인해 디지털 상속과 관련된 법령도 상당히 복잡하게 발전해 왔다. 그러나 동시에 유럽연합이라는 공통 틀 아래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기 때문에, 각국은 공통적인 가이드라인과 원칙을 따르면서도 세부적인 상속 절차나 범위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인다. 이번 글에서는 유럽 내 주요 국가들의 디지털 자산 상속법을 비교 분석하며,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명확하게 정리해 보겠다.
유럽연합의 공통 법적 기반 – GDPR과 디지털 권리 중심
유럽 국가들이 디지털 자산 상속과 관련하여 가장 강력하게 공유하는 공통점은 바로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일반 개인정보보호법)에 기반한 디지털 권리 보호의 원칙이다. GDPR은 2018년부터 시행된 EU 전역의 개인정보보호 규정으로, 개인의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생전만 아니라 사망 이후까지 연장할 수 있는지 대해 각국에 자율성을 부여하면서도 기본 틀은 유지하도록 설정돼 있다.
GDPR에 따르면, 사망한 사람의 데이터는 원칙적으로는 해당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지만, 일부 조항은 유족의 권리, 고인의 유언, 그리고 공공의 이익을 고려하여 유연하게 해석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EU 회원국은 ‘정보 주체 사망 후 그 데이터에 대한 접근과 처리’에 대한 지침을 별도로 마련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플랫폼 서비스 제공자는 고인의 명시적인 동의가 없을 경우에도, 유족이 법적 상속인임을 증명하면 일부 데이터를 공개하거나 계정 이관을 검토해야 할 책임이 있다. 또한,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은 EU 내에서는 GDPR을 따라야 하므로, 사망자의 계정 처리 정책을 보다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 국가들은 개인정보보호와 상속권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공통 규범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국가별 디지털 상속 법령의 실제 차이점
공통의 GDPR 틀 아래에도, EU 국가별 디지털 상속법의 적용 방식은 상당히 다양하다. 이 차이는 주로 디지털 자산의 법적 정의, 상속인의 권리 인정 여부, 사후 데이터 접근 조건 등에서 나타난다.
▪ 독일(Germany)
독일은 2018년 연방대법원(BGH) 판결을 통해 디지털 유산에 대한 상속권을 명확히 인정했다. 특히 부모가 사망한 자녀의 페이스북 계정에 접근할 권리를 인정한 이 판결은 유럽 전역에서 주목받았다. 이에 따라 독일에서는 디지털 계정도 재산권의 일종으로 간주하며, 물리적 유산과 동일한 방식으로 상속된다. 다만, 서비스 제공자가 상업적으로 보관 의무가 없다고 판단하면 삭제도 가능하다.
▪ 프랑스(France)
프랑스는 디지털 유산을 생전에 본인이 명확히 지정해야만 상속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2016년 ‘디지털공화국법(Loi pour une République numérique)’을 통해 디지털 계정의 사후 처리 방침을 사용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사용자가 사망 전 계정 처리 방침을 설정하지 않으면, 유족은 기본적으로 해당 계정에 접근할 수 없으며, 법원의 명령이 있어야 제한적으로 접근이 허용된다.
▪ 이탈리아(Italy)
이탈리아는 비교적 보수적인 접근을 하고 있으며, 디지털 자산을 법적으로 상속 가능한 자산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상속인이 사망자의 계정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민사소송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로 접근이 제한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플랫폼 정책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있으며, 법적으로 일관된 해석은 아직 확립되지 않은 상태다.
이처럼 EU 내 국가들 사이에서는 공통의 규범은 존재하지만, 실제 적용에는 명확한 법제화 여부와 판례의 유무, 그리고 행정 절차의 복잡성 등에서 큰 차이가 존재한다.
디지털 상속 절차와 유족 접근권의 현실 적용
EU 국가들은 디지털 자산 상속을 법적으로 인정하거나 보호하고자 하는 의지가 높지만, 실제 상속인이 계정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장벽이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어려움은 다음과 같다:
- 서비스 제공자의 국가별 정책 차이
예를 들어, 동일한 페이스북 계정이라도 독일에서는 법원의 명령 없이 유족이 접근 가능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생전 지정이 없으면 접근 불가다. 플랫폼은 국가별 법령을 따르기 때문에, 거주 국가에 따라 같은 서비스도 다른 방식으로 처리된다. - 2단계 인증 및 보안 시스템
유럽 대부분의 플랫폼은 보안이 매우 강화되어 있어, 유족이 고인의 계정에 접근하려 해도 비밀번호 외에 생체인식, OTP, 백업 이메일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는 법적 권한이 있어도 기술적으로 접근이 제한되는 주요 원인이다. - 법원의 개입 필요성
대부분의 경우 유족은 고인의 사망 증명서, 상속인 증명서, 법원의 접근 허가 명령을 통해 디지털 계정 접근을 요청하게 된다. 그러나 각국의 법원은 사안별로 접근을 허용할지 여부를 판단하므로, 절차와 결과가 국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결국 유럽은 법적으로는 보호를 추구하면서도, 기술적·행정적 관문은 여전히 높다. 이 때문에 생전 사용자 스스로가 계정 처리 방침을 명확히 남기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유럽의 교훈 – 디지털 유산은 개인의 사전설계가 핵심
EU 국가들의 사례는 한 가지 명확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바로 "디지털 유산은 법만으로 정리되지 않으며, 생전에 개인이 직접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개인정보와 상속권 사이의 균형을 고려하지만, 실제 상속인의 권한은 사용자가 사전에 어떤 조치를 했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구글의 Inactive Account Manager, 애플의 Legacy Contact, 페이스북의 추모 계정 지정 같은 사전 설정 기능은 EU 사용자들에게 점점 더 보편적인 절차가 되어가고 있다. 프랑스와 같은 국가는 이러한 기능을 법적으로도 권장하고 있으며, 디지털 유언장 형태의 계정 처리 계획서를 남기는 것도 장려된다.
또한, 유럽의 많은 변호사와 디지털 상속 전문가는 ‘디지털 자산 목록 + 처리방침 문서’를 생전 작성해 공증 받는 방식을 적극 추천하고 있다. 이는 실제 상속 과정에서 법원이나 플랫폼 측의 협조를 받을 때 매우 유용하다.
결론적으로 유럽연합은 디지털 유산이라는 복잡한 자산의 상속을 점진적으로 제도화하고 있으며, 국가 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사전 준비가 유일하게 통일된 핵심 해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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