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 상속법

한국 vs 미국의 디지털 유산 상속법 비교

pookad 2025. 6. 27. 09:27

 

 

 

국경을 넘어 복잡해지는 ‘디지털 사망’의 문제

 

디지털 유산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은행 계좌나 부동산, 보험처럼 물리적 유산은 비교적 명확한 절차를 통해 상속된다. 그러나 디지털 유산의 상속은 아직도 국가마다 해석이 다르고 법적 기준조차 불분명한 상황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미국은 디지털 유산을 다루는 법적 관점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상속인이 국내외에 걸쳐 있는 경우 갈등과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글로벌 플랫폼의 본사가 미국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한국인의 사망 이후 디지털 자산 접근권한 문제는 결국 미국법의 영향을 받는 구조가 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디지털 유산 상속법을 비교해, 법적 인식과 적용 범위, 실제 대응 시스템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분석해본다.

 

디지털 유산에 대한 법적 정의부터 다르다

 

한국과 미국은 디지털 유산을 정의하는 기본적인 접근법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인다.
먼저 한국의 경우, 디지털 유산이라는 개념 자체가 민법이나 개인정보 보호법에서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다. 법률상 '유산'은 재산에 국한되며, 그 안에 디지털 자산을 포함한다는 구체적인 조항은 없다. 때문에 암호화폐나 온라인 예금은 상속세 부과가 가능하지만, SNS 계정이나 이메일, 클라우드 저장소에 대한 상속 권리는 모호한 상태다. 플랫폼의 정책에 따라 유족이 계정을 삭제하거나 요청할 수 있지만, 법적인 근거는 부족하다.

반면 미국은 디지털 자산의 개념을 법제화한 대표 국가다. 2015년 미국의 Uniform Law Commission은 'RUFADAA(Revision of Uniform Fiduciary Access to Digital Assets Act)'를 제정하여,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에 대해 유족이나 법적 대리인이 접근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 법은 미국 내 대부분의 주에서 채택되었으며, 사용자의 생전 설정 또는 법원의 명령에 따라 디지털 자산을 상속인에게 이관하거나 열람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즉, 미국은 디지털 유산에 대해 법적 권리로 인정하고 있으며, 서비스 제공자도 이를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플랫폼 접근권과 유족 권한 처리 방식의 차이

 

한국에서는 고인의 디지털 자산에 접근하려는 유족들이 실제로 겪는 가장 큰 문제는 플랫폼에서 계정 접근을 거부하거나, 삭제만 가능하다고 안내받는 경우다. 예를 들어, 카카오톡의 경우 사망자의 계정 정보에 대해 접근 권한을 요청할 수는 있지만, 실제 대화 내용이나 백업된 메시지까지 제공받기는 매우 어렵다. 네이버 역시 사망 확인 서류와 상속인 증명 서류를 제출해야 계정 삭제만 가능하고, 내부 콘텐츠에 대한 열람이나 이관은 원칙적으로 불가하다.

구글과 애플의 경우, 한국 사용자의 계정도 미국 본사의 정책을 따르기 때문에 미국법이 일부 적용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RUFADAA와 같은 통일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국내법적 근거로는 구글 계정 접근을 강제할 수 없는 구조다. 유족이 할 수 있는 것은 구글의 'Inactive Account Manager'나 애플의 '디지털 유산 연락처' 같은 생전 설정을 해뒀을 때만 적용받을 수 있다.

반면 미국은 법률에 근거한 유족의 접근 권한이 보장된다. 예를 들어 유언장에서 디지털 자산 이관을 명시하거나, 서비스 이용약관에 따라 접근 권한을 위임했다면, 유족이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의 플랫폼에 법적 요청을 통해 계정 내용을 열람하거나 특정 데이터를 이관받을 수 있다. 물론 모든 데이터가 자동 공개되는 것은 아니지만, 법원이 발급한 명령문(Fiduciary Court Order)이 있으면 상당수의 플랫폼이 법적으로 따라야 한다.

 

현실 적용 사례 – 미국은 사전 준비 중심, 한국은 사후 대응 중심

 

미국은 디지털 유산 상속이 법제화되어 있는 만큼, 사망 이전 단계에서의 사전 준비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실제로 많은 미국인은 변호사와 상의하여 유언장에 디지털 자산 목록과 접근 권한 설정을 명시하며, 비밀번호 관리자 앱이나 계정 위임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구글 계정의 Inactive Account Manager 기능이나 애플의 Legacy Contact 설정은 미국 사용자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절차다.

한국은 아직까지 디지털 유산의 사전 준비가 보편화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디지털 자산 현황을 정리하지 않으며,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가족들이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유족이 휴대폰 잠금 해제를 위해 디지털포렌식 회사를 찾거나, 법원에 정보보존 청구를 신청하는 일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이 들며, 플랫폼 측의 협조가 없다면 무용지물인 경우도 많다.

즉, 미국은 사망 이전에 디지털 유산을 관리하고 지정하는 ‘사전 중심 시스템’, 한국은 사망 이후 유족이 임의로 해결하려는 ‘사후 대응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구조적 차이가 실제 상속 과정에서 양국의 접근성과 투명성에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향후 과제와 준비 전략 – 한국이 미국에서 배워야 할 점

 

앞으로 한국 사회도 고령화와 디지털화가 함께 진행되면서, 디지털 유산 상속에 대한 법적 제도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해외 플랫폼 사용 비중이 높은 한국 사용자 특성상, 미국처럼 디지털 자산의 법적 정의를 정립하고, 상속인의 권리 보호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국회 차원에서 디지털 유산 상속 관련 특별법 제정이 논의되거나, 민법 개정을 통해 유산의 개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개인 차원에서도 미국처럼 생전 디지털 자산 목록을 정리하고, 유언장이나 사전관리 시스템을 통해 자산 처리 방침을 명확히 설정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전략이 권장된다:

  • 비밀번호 관리자 앱 사용 (1Password, Bitwarden 등)
  • 구글 Inactive Account Manager 활성화
  • 애플 디지털 유산 연락처 지정
  • 계정별 백업 정책 점검
  • 디지털 유산 목록 및 관리방안 유언장에 포함

결국 디지털 유산은 플랫폼의 문제이자,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다. 한국은 이제 막 문제 인식을 시작한 단계지만, 미국의 사례를 참고하여 보다 체계적이고 법적으로 보호받는 상속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