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 상속법

물리적 유산과 디지털 유산, 상속 우선순위는?

pookad 2025. 6. 26. 23:59

 

 

유산의 ‘우선순위’는 이제 재산 가치만으로 정할 수 없다

 

디지털 유산

 

사망 이후 남겨지는 유산은 과거에는 대부분 물리적 자산에 국한되어 있었다. 부동산, 예금, 차량, 귀금속 등은 법적으로 명확한 상속 절차가 존재하고, 가족들도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분배할지 판단하기 쉬웠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디지털 자산의 가치가 상승하고, 디지털 유산이 정서적·사회적 중요성을 가지면서 '상속의 우선순위'에 혼란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과연 디지털 유산은 물리적 유산보다 후순위로 취급되어야 할까? 아니면 그 가치에 따라 경우에 따라 더 앞서야 할까?
이 글에서는 물리적 유산과 디지털 유산의 특성 차이, 법적 관점, 실제 분쟁 사례를 바탕으로 상속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는 것이 현명한지 구체적으로 분석해본다.

 

물리적 유산 vs 디지털 유산 

 

우선, 물리적 유산은 실체가 존재하는 재산을 말한다. 여기에는 부동산(주택, 토지 등), 금융 자산(예금, 주식, 채권), 차량, 현금, 골동품, 귀금속 등이 포함된다. 이런 자산들은 대부분 명의가 명확하고, 등기·계약서 등의 공적 증빙 자료가 존재하기 때문에 상속 절차가 상대적으로 정형화되어 있다. 상속세 신고 역시 자산의 시가평가 기준에 따라 비교적 명확하게 이뤄진다.

반면, 디지털 유산은 실체가 없는 정보 기반의 자산이다. 암호화폐나 NFT처럼 법적으로 상속 가능한 디지털 자산도 있지만, 대부분은 SNS 계정, 메신저 기록, 사진/영상 저장소 등 비재산적 가치 중심의 콘텐츠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디지털 유산들이 사망 이후에도 플랫폼 서버에 남아있지만, 접근 권한이 제한되고, 법적으로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물리적 유산은 '재산의 이전'이라는 상속의 목적에 충실한 반면, 디지털 유산은 ‘기억과 존재의 전달’이라는 비재산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상속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선순위를 정할 때는 단순한 자산 가치가 아니라, 그 상속 목적과 가족 간의 감정적 중요성까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법적 기준에서의 우선순위 

 

현행 대한민국 민법상, 상속은 '재산상 권리와 의무'를 이전하는 개념이다. 여기서의 '재산'은 주로 물리적 유산을 지칭하며, 디지털 자산은 암호화폐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법적으로 상속 대상으로 명시된 경우가 거의 없다. 즉, 법률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면 디지털 유산은 후순위에 위치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고인의 예금 계좌나 부동산은 유족이 상속 신고를 통해 명의 이전이 가능하지만, 고인의 이메일 계정, 유튜브 채널, 블로그, 클라우드 사진 등은 유족이 자동으로 접근하거나 소유권을 이전받을 수 없다. 이는 플랫폼 정책, 개인정보보호법, 해외 서버법 등 복합적인 법률 장벽 때문이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디지털 유산이 오히려 더 우선시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고인이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의 월 수익이 수백만 원에 달하거나, 블로그에 수만 명의 구독자가 있는 경우, 이는 상속 가치가 큰 자산으로 재평가된다. 이처럼 실제 자산 가치가 높거나, 특정 가족 구성원이 관리할 필요성이 있을 경우에는 물리적 자산보다 먼저 상속 협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즉, 법적으로는 디지털 유산의 위치가 모호하나, 실제 상속 과정에서는 유족 간 협의에 따라 그 중요도가 결정되는 유연한 구조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정서적·기능적 가치에 따른 상속 우선순위 재정의

 

상속의 목적은 단순히 '재산 분배'에만 있지 않다. 어떤 유산은 고인의 삶과 기억, 감정의 연속성을 남긴다는 측면에서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예를 들어, 고인의 카카오톡 메시지 백업, 손주와의 동영상 기록, 부모가 남긴 블로그 일기 등은 경제적 가치는 없지만, 정서적으로는 무엇보다 중요한 유산이 된다.

또한, 가업을 디지털 기반으로 이어가야 하는 경우, 디지털 자산이 상속에서 1순위가 되어야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쇼핑몰 운영자, 유튜버, 블로거, 인플루언서 등의 경우에는 고인의 SNS 계정, 고객 이메일 리스트, 웹사이트 접속 권한 등이 없으면 사업을 이어갈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상속 우선순위는 법적인 틀 안에 갇히기보다는 고인의 생전 직업, 자산의 실제 활용도, 유족의 필요성에 따라 맞춤형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특히 정서적 치유가 필요한 경우에는 고인의 흔적을 먼저 정리하고, 상속인이 해당 자료를 보관하거나 추모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인별·가족별 우선순위 기준 수립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유산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게 인식된다. 어떤 사람은 아버지의 예금보다 오래된 이메일 한 통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고, 어떤 가족은 부동산보다 유튜브 채널 로그인 정보를 더 급하게 필요로 할 수 있다. 따라서 상속의 우선순위는 법적 원칙과 함께 개인과 가족의 상황, 감정, 목적에 따라 유연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디지털 자산 및 유산 우선순위 리스트’를 생전부터 준비하는 것이다.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서대로 자산 목록을 작성하고, 각 항목별로 다음과 같은 정보도 함께 정리해야 한다.

  • 계정명 / 비밀번호 / 2단계 인증 방식
  • 법적 상속 가능 여부
  • 가족 중 누가 승계하길 원하는지
  • 삭제 / 유지 / 공유 등 사후 처리 희망사항
  • 정서적/경제적 가치 평가 점수

이러한 리스트를 통해 유족은 사망 이후 분쟁을 최소화할 수 있고, 고인의 뜻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자산을 정리할 수 있다. 특히 디지털 유산은 플랫폼별 접근 방식과 삭제 정책이 다르기 때문에, ‘계정 접근 가이드’도 반드시 함께 남겨야 한다.

결국, 상속의 우선순위는 물리적·디지털 유산을 이분법적으로 나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자산이 갖는 실제적 가치, 기능, 정서적 중요성에 따라 유동적으로 정해져야 한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정답은 없지만, 준비만은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