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 상속법

일본과 중국의 디지털 상속 시스템, 우리와 다른 점은?

pookad 2025. 6. 27. 18:17

 

 

 

아시아권 디지털 상속, 나란히 걷지만 각기 다른 방향

 

디지털 자산이 개인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사망 이후 이러한 자산을 어떻게 처리하고 상속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한국, 일본, 중국과 같은 아시아권 국가들은 빠르게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해 온 만큼, 고인이 남긴 디지털 흔적 역시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러나 세 나라의 법적 대응 방식과 사회적 인식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은 아직 디지털 유산에 대한 법적 정의나 제도적 틀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이고, 대부분 유족이 사후에 임의로 대응해야 하는 구조다. 반면, 일본과 중국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디지털 상속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으며, 몇몇 부분에서는 한국보다 한발 앞선 제도적 움직임을 보인다. 이 글에서는 일본과 중국의 디지털 유산 관련 법과 절차를 살펴보고, 한국과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비교 분석해 보겠다.

 

일본의 디지털 상속 시스템 – 판례 중심의 현실적 접근

 

일본은 디지털 자산의 상속과 관련하여 한국과 마찬가지로 아직 명확한 포괄적 법률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일본은 다양한 법원 판례와 민간 기업의 지침을 통해 점진적인 디지털 상속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일본 민법에서도 유산은 원칙적으로 금전적 재산에 한정되지만, 최근 들어 디지털 자산이 재산의 일종으로 취급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판례는 2019년 도쿄지방재판소에서 내려진 결정으로, 사망한 사용자의 스마트폰 내 사진과 메신저 기록, 이메일 계정 등도 재산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었다. 이에 따라 가족은 사망자의 스마트폰 잠금을 해제하고 내부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받았다. 이 판례는 일본 내에서 디지털 유산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이후 일본의 대형 통신사들과 포털 기업들도 자체적으로 유족 요청 시 계정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정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또한 일본은 ‘디지털 유언장(デジタル遺言)’이라는 개념이 실무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고인이 생전에 본인의 디지털 자산을 어떻게 정리하고 누구에게 넘길지를 명시한 문서를 남기면, 유족이 이를 기반으로 계정 삭제, 데이터 이관, 보관 등의 요청을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 한국보다 앞선 것은 바로 이처럼 사법부의 판단이 실제 정책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디지털 상속 정책 – 강력한 국가 통제 기반의 상속 체계

 

중국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 속도에 비해, 법적인 디지털 상속 체계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구축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위챗(WeChat), 알리페이(Alipay), 타오바오(Taobao) 등 거대 플랫폼들이 사망자의 계정 처리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면서 점차 제도화되고 있다.

중국 민법전은 2021년 개정을 통해 "상속할 수 있는 재산의 범위에 디지털 자산도 포함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이 조항은 사망자가 생전에 보유한 전자화폐, 전자 계정, 지식재산권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며, 특히 금전적 가치가 있는 디지털 자산에 대한 상속을 명문화한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SNS 계정, 메신저 기록, 클라우드 콘텐츠 등 비금전적 자산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분명한 상태다.

 

디지털 유산

 

중국 플랫폼들은 국가 정책에 따라 실명제 기반의 계정 운영을 시행하고 있으며, 사망자의 계정 처리도 철저한 인증 절차를 필요로 한다. 유족이 위챗 계정을 삭제하거나 이전하기 위해서는 사망 증명서, 상속인 증명서, 그리고 법원의 공식 판결문이 필요하다. 절차는 복잡하지만, 일단 요건이 충족되면 실행 속도는 빠르며, 접근이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다.

특이한 점은 중국은 플랫폼 기업이 아닌 국가가 직접 디지털 유산 관련 통제를 강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정보 보호보다 데이터 보안과 국가 통제를 우선시하는 중국 정부의 정책 성향이 반영된 결과다. 따라서 중국은 상속인의 권리보다는, 계정 및 정보의 국가적 관리와 절차적 통제를 우선하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한국과 비교했을 때 드러나는 명확한 차이점

 

한국은 디지털 자산 상속에 있어 일본이나 중국보다 제도적 기반이 더 약한 상태다. 디지털 자산이라는 개념 자체가 민법, 상속세법, 개인정보보호법 어디에도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유족은 대부분의 경우 플랫폼과의 비공식적인 협상이나 법원 명령을 통해 개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반면 일본은 판례를 통해 디지털 자산도 상속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고, 중국은 민법에 해당 내용을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법적 기반이 더 명확하다. 한국에서는 유튜브 채널, 블로그 수익 계정, 이메일, 클라우드 등에 대한 유족 접근 요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은 반면, 일본과 중국에서는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접근이 가능하다.

또한 두 나라 모두 ‘사전 준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일본은 디지털 유언장을 작성하는 문화가 확산하고 있고, 중국은 위챗이나 알리페이에서 사전 사망 처리 옵션 설정 기능을 도입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사망 이후 계정 삭제나 접근에 대해 개인과 가족이 알아서 대응하는 수준이다. 디지털 유산은 이미 존재하지만,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상태이다.

 

한국이 배워야 할 점 – 제도화보다 먼저 필요한 ‘디지털 사전 설계’

 

한국이 일본과 중국의 사례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제도 정비 이전에 개인의 사전 준비가 핵심이라는 점이다. 아직 한국에는 디지털 자산 목록을 정리하거나, 디지털 유언장을 작성하는 문화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일본처럼 판례가 실제 정책을 바꾸거나, 중국처럼 실명 기반 계정 체계가 유족의 권리를 간접적으로 보호하는 방식은 한국에도 도입 가능성이 있다.

우선적으로 한국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도입 또는 강화해야 한다:

  • 디지털 유산 정의 및 분류를 민법 또는 별도 특별법으로 규정
  • 사망자 계정 접근에 대한 유족 권리 명문화
  • 디지털 자산 목록 정리 및 유언장 포함을 장려하는 공공 캠페인
  • 구글, 애플, 네이버, 카카오 등의 주요 플랫폼에 사전 설정 기능 도입 권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이 자신의 디지털 자산이 어디에 있고,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물려주고 싶은지를 생전부터 스스로 설계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일본과 중국 모두 완벽한 제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준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사회라는 점에서, 한국은 그 첫걸음을 이제 막 떼어야 할 시점이다.